조지훈 문학관 소개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읽은 책 목록입니다.

<갈매기의 꿈> <어린왕자> <역사란 무엇인가> <꽃들에게 희망을> <삼국지>(중간에 포기) <대지> ...

네, 독후감 숙제를 해야하니까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 제일 위에서부터 적당히 골라 읽은 겁니다. 페이지 수를 많이 고려했네요. 펄벅의 <대지>는 중간을 읽을 때쯤에는 앞내용을 잊어버려서 다시 앞에서부터 읽기를 반복한 기억이 납니다.

이제 소공의 목록입니다.

<히랍인 조르바> <지하생활자의 수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넵스키 거리>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빨강머리 앤> <진달래 꽃> <봄봄>...

이런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좋은게 시든 소설이든 철학서든 재미있는 책의 재미있는 부분을 골라서 줍니다. 그것마저도 귀찮으면 그냥 말로 들려달라고 하면 됩니다. 무진장 재미있었던 고골의 <외투> 도 그렇게 읽었(?)어요.

이번 달 취재는 시인 조지훈의 문학관입니다.


<지훈문학관>(공식웹사이트)은 경상북도 영양군에 있습니다.
서울에서 영양까지 직행 버스가 있습니다만, 오전 8시20분 첫차를 타고 내려가도 영양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오후 3시55분 막차를 타려면 문학관 대문만 만지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당일 코스로 가기위해 안동을 경유해서 갔습니다.

서울센트럴시티 터미널(07:20) → 안동버스터미널 도착(10:10) → 영양행 버스 승차(10:36) → 영양버스터미널 도착(11:56) → 재산행 버스 승차(12:30) → '주곡숲' 정류장 하차(12:40) → 지훈문학관 


"아! 청록파 시인!" 이라고 외치자 소공이 흘겨봅니다. 저에게는 공교육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시(詩)를 좋아라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한국 근대시를 일부러 읽을 일도 없었을 제 뇌에 학교가 새겨놓은 몇 개의 단어가 이 날 빛을 발합니다.

"오! 승무! 오오오! 승무!!!" 
아는 단어를 만날 때마다 추리소설의 단서가 하나씩 맞아가는 것 같은 쾌감이 느껴집니다. 요즘도 학교에서 <승무>를 배우나요?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정말 감흥없이 외웠던 시였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꾸밈이 많고 예쁘고 화려한 느낌의 친구였네요.

청록파 삼인방의 사진은 왠지 느와르 영화의 한장면처럼 멋있습니다.

조지훈, 청록파, 승무 - 이 세 개의 단어만 알고 있으면 불편함 없이 <지훈문학관>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시기와 주제별로 설명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저같은 문외한도 한시간 가량 지루함 없이 지식과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진 자료가 풍부합니다.



페인트를 칠한 벽, 팔이 닫는 부분에 인조가죽을 덧댄 의자, 반짝거리는 테이블은 에나멜을 칠한 나무인지 아니면 합성수지일지, 맥주는 이제 막 따라놓고 담배 먼저 태우고 있으신 것 같고.... 이런 사진들을 보면 몇시간이라도 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문학관 방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장면 입니다. 동네에 이런 형이 한 명 있으면 그 동네 아이들은 문학집을 내면서 놀고, 그 동생은 교과서에 실리는 시인이 되는 겁니다. 자아, 주위를 둘러보세요.

문학관이 있는 주실마을은 동네 전체가 고택들이 드글드글한 테마파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냥 전통가옥이 이쁘게 늘어서 있는 곳이 아니라 진짜 꼿꼿한 선비들의 동네였던 곳입니다.  동네 전체가 똘똘 뭉쳐서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 가신다면 경외심 같은 것도 느껴지실 겁니다.  낡은 박제처럼 오래된 집들이 동네 곳곳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세심하게 관리가 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역시 한옥은 아름답습니다. 쥐똥이 여기저기 쌓여있고, 치우지않은 플라스틱 바가지와 스티로폼 박스가 굴러다니는게 안타까울 정도로요.


옥천종택 대청마루에 앉으면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입니다. 진정 큰 어른의 집이로군요.


유일한 가게인 주실수퍼에 들러 하드 하나 사먹고 잠시 쉬니까 오후 4시입니다. 마을에는 식사할 곳이 따로 없으니 물과 요기거리는 챙겨가셔야 해요.

주실마을에서 영양터미널로 돌아오는데 마을분들이 가르쳐준 버스 시간도, 정류장에 붙어있는 시간표도, 인터넷에서 검색한 시간표도 모두 맞지 않아서 당황했습니다. 4시15분쯤에 있을거라는 버스가 5시에 왔어요.

기다리는 동안 길가에 산딸기가 널려있길래 실컷 먹었습니다.


소공이 본 <지훈 문학관>은 문장웹진 7월호의 표지로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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